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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는 나일강의 힘과 대규모인 토목공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현장 감독의 일기에 기록되고 있었다

나나시노 2017. 10. 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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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는 나일강의 힘과 대규모인 토목공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현장 감독의 일기에 기록되고 있었다





이집트에 존재하는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경에 만들어졌다고도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만, 어떻게 해서 1개당 약2톤도 있는 돌을 300만개도 날라서 쌓아 올린 것인가, 그 건설 방법은 여전히 수수께끼가 많았던 채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이집트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팀이 당시의 공사 모양을 기록한 서류를 조사한 결과, 피라미드에 사용된 돌을 멀리 떨어진 채석장에서 자르기 시작해서 배에 태우고, 뭐라고 나일강을 이용해서 인공의 운하를 건설하고, 피라미드 가까이까지 나르고 있었다고 적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피라미드 건설 당시에 돌 운반을 하고 있었던 팀을 모으고 있었던 「Merer」이라고 하는 이름의 남성이 파피루스에 기록하고 있었던 것으로,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로부터 약200km 떨어진 항구 「Wadi al-Jafr」에서 발견된 것. 조사팀이 「세계최고의 현존하는 파피루스에 하나」라고 말하는 이 기록에는, 기자 피라미드로부터 약 800km도 떨어진 룩소르에서 돌을 배에 태우고, 나일강에 의한 흐름에 태워서 하류의 기자까지 나르고, 더욱 피라미드 건설 지점의 근처에까지 연장한 운하를 사용해서 운반하고 있었던 것이 적혀 있는 것.




피라미드용 거석을 수송하는 계획은 장대한 것으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해서 나일강의 흐름을 일부 바꾸는 것으로, 건설중인 피라미드 바로 옆까지 수송선이 거석을 실어서 도착할 수 있게 되고 있었던 것. 당시의 모양을 재현한 CG에는 만들어져 있는 도중의 피라미드 측에 항구가 만들어져, 배를 넣을 수 있게 풍경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Merer의 파피루스는 피라미드의 수수께끼를 풀어 밝히려고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잘 알려져져 있는 것으로, 당시의 기록을 남기는 귀중한 문헌으로서 해독이라고 분석이 행하여져 온 것. 이 파피루스와 달리, 쿠푸왕의 피라미드 측에서 발견된 제사용 배와 수로의 자국, 그리고 당시의 배 만드는 방법을 가리키는 증거가 발견된 것이 모두 합쳐지고, 과학자에게 어떤 번쩍임을 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피라미드에 매장되고 있었던, 쿠푸왕이 사후를 응해서 지휘를 하기 위해서로 여겨지는 배의 잔해. 조사팀은 이 잔해를 3D 레이저 스캐너로 형상을 채취하고, 당시의 배 구조를 조사했습니다.




조사팀은, 실제로 당시의 배를 재현해서 돌을 운반하는 재현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발굴된 배의 잔해나, 다른 장소에서 발견된 배를 만드는 방법을 나타내는 기록에 의하면, 길이 8미터 정도의 배는 못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길이 대충 5km에 달하는 로프로 선체의 모든 부품을 서로 연결시키는 공법이 빼앗기고 있었던 것 같고, 팀에서는 당시를 만드는 방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건조는 어렵고 물이 배 안으로 들어가는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 그러나, 약2톤의 거석을 나를 수 있는 강도를 갖추어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거석을 수송하기 성공한 조사팀. 피라미드의 옆까지 돌을 운반하고, 가공을 실시할 수 있는 것을 확인.




이렇게해서 옮겨진 돌을 쌓아 올리고, 피라미드가 만들어져 갔습니다. 하지만 약2톤의 돌을 어떻게 해서 쌓아 올려 간 것인가, 그 방법은 아직까지도 모릅니다. 일설로 의하면, 피라미드 옆에 흙으로 거대한 슬로프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운반해 올렸다도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그 증거와 되는 것이 아직 발견 안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토목공사에 의해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단순한 왕무덤의 건설 프로젝트에 머무르지 않고, 이집트라고 하는 도시, 그 바로 그것을 형성하는 건축 기술의 기초가 되었다고도 생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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